
회색
진국
W. by ZOO
(@ggugi4hlu)
“형은 왜 회장님 아니고 이사예요?”
“난 젊고 잘생겼잖아. 늙고 못생긴 사람만이 회장이 될 수 있어.”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쏙 넣고서 분홍 숟가락을 뺄 생각도 않고 머리를 주억거린다. 역시. 천재다. 이 동네에서 제일 똑똑한 형. 아. 이 동네에 안 사는데. 그럼. 음. 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해야겠다. 모르는 게 없다. 물어보면 막힘없이 대답해준다. 그러고 보면 슈퍼 아주머니가 즐겨보는 드라마 속에서 하나같이 늙고 못생긴 사람을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형은 젊고 잘생겨서 회장을 못하는구나. 안 하는 건가? 안 했으면 좋겠다. 똑똑하고 잘생겼는데 회장님 됐다고 늙고 못생겨지면 어떡한담. 괜히 제가 다 속상할 거 같다.
“형. 그럼 형은 왜 우리집 와요?”
“…….”
긁어먹을 아이스크림도 없는데 괜히 입에서 숟가락을 뺐나 보다. 물고 있으면 이런 질문도 안 했을 텐데. 입술을 꾹 다문 모습이 무섭다. 척하면 착하고 대답 잘해주는 형이었기에 이것도 바로 알려줄지 알았는데. 위아래 입술이 딱 붙어 있을수록 표정이 사라진다. 눈만 도로록 굴리기. 굴곡진 인생에서 갖은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은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아직 조금 모자라다. 아주 조금.
“네 아버지 잡으려고.”
얼굴에서 사라진 감정만큼이나 정감 있는 대답은 아닐 거라 여겼지만 찬바람이 쌩 부는 답일 줄이야. 더욱이 해결 방법이 없는. 아버지. 참 생소한 단어다. 지금까지 이 말을 입에 담아본 적 있으려나. 한 손에 꼽을 듯하다. 그저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고 발악하는 존재를 태어나게 했으니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생존 여부는 모른다. 아. 이름도 주긴 했다. 주머니 안에 이름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고 했다. 어쨌든. 기억의 시작은 혈연으로 묶을 수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밥 한 숟가락 더 먹겠다고 팔 뻗은 거다. 그곳을 나온 지금도 떠올린 적 없는 존재다. 그러니 이렇게 아이스크림이며 간식 사다 준 형을 위해서라도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싶은데 아는 게 없다.
“그런데 못 잡을 거 같아.”
어쩜. 제 생각이랑 이렇게 똑같은지.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생김새조차 모르는데. 그럼 포기하고 이제 다른 얘기 하면 안 되나. 신발 뒤꿈치를 바닥에 콕콕 찍으면서 어떻게 화제를 돌릴까 고민한다. 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까처럼 질문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나오면 어쩌나. 일주일에 한 번 꼬박 보는 얼굴이라지만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감정이 없는 형은 무섭다.
“그래서 대신 널 잡으려고 왔어.”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무얼 뱉으려 했나. 생각했던 질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앞에 서 내려다본다. 고개를 들어 마주 보고 있자니 원래 이런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사람 좋은 모습에 속아, 잘 먹어야 한다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따뜻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진실.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아직도 다물지 못한 입술을 어찌하기도 전에 생전 겪지 못한 통증이 뒷목에서 느껴진다. 아득해지는 정신에도 웃음이 샌다. 얻을 게 없는 고아에게 잘해주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선 잘 대해준 이유를. 그리고 왜 본인이 더 쓰린 표정을 짓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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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위해서라면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살고자 남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취하려는 자나 이득을 챙기기 위해 자식을 기꺼이 파는 자나. 이쪽 바닥에서야 흔한 일이지만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진절머리가 나는 건 마찬가지다.
“어떻게 할까요.”
그러게.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끊이지 않은 고민은 결국 두통으로 이어진다. 제 아비가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라 했다. 이식 수술을 하면 살 확률이 ‘그나마 높은’ 끝이 눈앞에 보이는 삶. 예고하지 않은 운명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병원에서의 약물치료보다 이식을 선택한 아비는 상성이 맞는 자를 찾느라 혈안이었다.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이게도 유일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석진은 아비와 부합했다. 그랬기에 더 눈이 벌게지도록 찾았을지도. 이런 사람 앞에 달콤한 말을 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있는지도 몰랐던 아비의 수하 중 한 명이 적합 자를 찾았다 했다. 온갖 정보와 인력을 동원해도 못 찾은 사람을 말이다. 이 자가 요구한 건 오로지 돈이었다. 적합자를 데려오기 위해, 혹은 처리하기 위해 드는 수고에 대한 비용을 청구했다. ‘살 수 있는 희망’에 눈이 먼 아비는 그 자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렇게 퍼주기를 두 달. 그제야 의심이 든 아비는 남자를 조사했고 거짓말임을 알았을 땐 이미 남자는 흔적을 지운 채 사라지고 난 후였다. 이제는 산소 호흡기를 껴야 만이 살 수 있는 아비의 버석거리는 입술이 달싹였다. 남자를 찾거나, 혹은 그의 자식을 찾거나. 그 누군가를 찾든 간에 산 채로 데려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깊은 수면에 빠졌다. 병실에 기계음만이 울리는 아주 고요한 공간. 환자의 존재보다 인간의 추악한 욕심이 더 가득한 병실이다.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산소 호흡기에 한참 눈빛이 내려앉았다 사라졌다. 마지막 이성이 치 떨리게 싫어하는 그 족속과 같은 인물이 되지 말라고 속삭였기에 조용히 병실을 나오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병실을 나오고 나서 들어온 보고는 아비와 상성이 맞는 자에 대한 정보였고 그 사람은 남자의 아들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제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있는 사람. 전정국. 인연이라고는 그냥 한 번 얼굴이나마 확인하고자 찾아가 접근한 후로 몇 번. 남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관계. 그것 외엔 없는데도 왜 이리 미련이 생기는지.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제 품 안에 숨겼더니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어찌나 눈치가 빠르던지. 한발 늦었으면 새근거리는 저 숨이 이미 끊긴 지 오래였을 거다.
“어쩌면 좋을까.”
“무고한 희생은 없어야죠.”
정확히 ‘누구의’ 무고한 희생이 없어야 하나. 해석하기 편한 대답은 명분만 만들면 되는 거다. 이러한 명분으로 무고한 희생을 하지 않는다. 얼마나 그럴듯한지. 같이 지낸 지 십여 년이 지난 사이답게 서로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속속들이 잘 알아서 원하는 대답만을 골라낸다. 어느 쪽이든 간에 선택했다. 두 개의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되돌아갈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못 살리기에. 제 아비나 저나 결정을 내렸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쪽도 이미 정국에 대해 알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한순간도 머뭇거릴 수 없다. 그만 나가보라 하니 남은 건 단 둘이다.
“일어나도 돼.”
“…….”
“여기에 너 깬 거 모르는 사람 없어.”
“저 죽어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깨어 있었나. 아니면 눈치가 빠른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아직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 뱉을 소린 아니라는 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침대 끝에 앉는다. 죽이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책임질 생각은 없다. 아비는 곧 명을 달리할 거다. 누구의 손이든 상황에 의해서든 간에. 그럼 이 아이도 곧 자유로울 거다. 혼자서도 잘 살았으니 가느다란 숨이 끊기면 살던 대로 살면 된다. 한데 어째서 그 이후를 계속 염려하고 걱정하는지. 잡음이 가득해 잔뜩 예민해진 신경을 눌러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해도 쉽지 않다.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 조그마한 머릿속엔 도망가야겠다는 단어는 없는지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제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시선을 맞춘다.
“형처럼 좋은 사람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엔 전 착한 일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좋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데 형이 저한테 잘해준 건 다 제가 필요해서잖아요. 그래서 형이 고민하지 않고 저를, 그러니까 절 죽여도 돼요. …망설이시는 거 같아서.”
“성인군자 납셨군.”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였다. 이런 답답한 소릴 들으려 한 건 아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미간을 좁혀 인상을 찌푸리며 애써 무시한다.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가슴이 턱 막혀 자가 호흡을 잊게 하는 저 말은 다시 주워담으라 하고 싶다. 이것도 감당해야 하는 선택지였다면 잠시 다시 생각해 볼 법도. 그 어떤 멍청이가 생전 남인 사람에게 납치를 당하고서 죽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한단 말인가.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에.
그런데 어째서. 의문이 든 후에 그에 대한 대답은 이어지지 않는다. 물음표로 끝난 문장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돈다. 정국을 죽이면 깔끔하게 끝날, 혹은 끝낼 질문이다. 하지만 죽이지 않기로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보호만 하면 될 일이다. 제가 지키든 혹은 저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없애든 간에. 그거면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하는 건데 이런 제 속을 모르는 저 눈동자가 약간은 서운하다. 그 짧은 시간에 정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착각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내’가 널 안 죽일 뿐이야. 살려준다고 한 적 없어.”
말은 마음과는 다르다. 대체 저의 무엇을 보고 망설이는 것 같다 어쩐다 하는지. 혼자 속도 퍽 편한 거 같아 괜히 비뚤어진 말로 한가득 뱉어버렸다. 금세 기가 죽어 고개를 푹 떨구는 머리에 입안에 맴도는 이죽거림을 참는다. 혀끝만 깨물어 못된 말을 집어삼킨다. 이럴 시간이 없다. 아마 이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전쟁일 것이다. 한가롭게 노닥거릴 정신도 없음을 알기에 조금만 더, 1초라도 더 침대에 엉덩이를 문대고 앉아있고 싶다.
“내가 나오라고 할 때 나와.”
작게나마 들린 불청객의 소음을 놓치지 않는다. 집 밖. 넓디넓은 마당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으리라. 여기까지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다. 더는 여유가 없다.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방문을 나서는 순간 단정함을 잃겠지만 적어도 나가는 마지막은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고 싶다.
“형은 어디 가는데요?”
“선택에 책임지러.”
머리카락까지 정리하고 나서 뒤돌아 눈을 맞춘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다. 하지만 더 설명해줄 게 없다. 말 그대로 선택에 대한 의무를 다하러 가는 것이기에. 그 끝이 어떨지는 저 방문을 열어봐야 안다.
“그 전까진 여기에만 있어.”
꼭 데리러 오겠다고 덧붙이고 싶지만 희망에 고문이라는 말이 붙을 만큼 피 말리는 바람은 부질없기에 말을 아낀다.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온다. 역시나 불청객은 이미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서 당당히 구둣발로 두 다리를 뻗고 있다.
“데리러 왔습니다.”
“난 아닌 것 같고.”
“비켜주시죠.”
적반하장도 저 정도면 오히려 한 수 배워야 할 정도다. 고작 한 명 데려가기를 이 많은 인원을 끌고 와놓고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헛바람 들 듯 피식 새는 웃음은 참지 않는다. 충분히 무시하고 더 깔보며 원하는 대로 될 리 없으니 괜한 힘 빼지 말자고 신호를 보낸다. 먹힐 리 없지만.
“응. 데려가. 능력껏.”
그럼 알아듣게끔 하는 수밖에. 잠근 수트의 단추를 푸른다. 오랜만의 격한 움직임일 듯하지만 걱정은 없다.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라 했으니 데려가야 하지 않나. 단지 저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갔을 때 왜 더 있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뭐로 하면 좋을지 그게 고민이다. 제 아비의 추악함을 끊어낼 때 저도 고개를 주억거릴만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