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renade
정인 作
오늘 전 정국이 죽었다. 사실 죽을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제 전 정국이 내게 미리 말해주기도 했고, 이미 곧 죽을 거라는 것이 이 바닥에는 소문이 나있었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빨리 뒤지는 게 이 세계의 순리라고 하지만, 전 정국은 자기가 죽을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가만히 제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그게 짜증이 났다.
전 정국을 태웠다. 마땅히 묻을 만한 곳도 없었고, 뒤진 인간들을 다 묻기에는 그럴 땅도 없었다. 차라리 시멘트에 넣고 깨부수어버리지. 그래서 택한 방법이 태우는 것이었는데, 전 정국 역시 미련 없이 불길 속에 던져버렸다. 십 년을 넘게 충성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었다. 시체에 불이 붙는 것을 확인하고는 모두가 자리를 떴다. 나도 바로 뒤를 돌았다. 더는 바라볼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전 정국이 죽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전 정국이 웃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나. 나도 자주 보지 못했다. 전 정국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거나 우는, 그 두 개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난 걔가 우는 걸 더 자주 봤다.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면 전 정국이 운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전 정국은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인간을 사랑하는 천성을 가졌기에, 그렇게라도 생을 견뎠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전 정국은 과연 생을 잘 견뎠던가. 아니다. 전 정국이 죽기를 바랐던 건, 내가 가진 비밀 중 하나였다.
전 정국의 수트는 아직 남아있었다. 그것도 함께 태우려고 했지만, 그게 전 정국이 남긴 유일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전 정국은 물욕이 없었다. 돈을 모으는 것에도 관심 없었고, 자주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음에도 손쉽게 셀 수 있는 만큼만, 그러니까 제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가져갔다. 수트를 바꾼 것도 내가 선물해줘서였다. 볼 때마다 같은 수트만 입고 다녔다. 검소한 것과는 좀 달랐다. 새롭게 수트를 선물 받고 나서는 그 수트만 또 다시 입었다. 빌어먹을.
전 정국은 총보다는 칼을 잘 썼다. 현장을 뛰는 소속은 아니었기에 제 몸을 지킬 정도로만 실력이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전 정국은 현장을 뛰는 놈들만큼이나 괜찮았다. 가끔 수가 부족할 때면 전 정국이 대신 뛸 정도였으니. 수트 안주머니에는 늘 칼 한 자루가 꽂혀있었다. 복도를 돌아다니는 전 정국에게는 총이 없었다. 그렇다고 총을 잘 쓰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주로 칼을 썼다는 얘기지, 그만큼 총도 능숙하게 다루던 게 전 정국이었다. 전 정국이 총을 쥐는 날은 훈련이 있는 날뿐이었다. 새로 들어온 놈들을 교육 시킬 때 전 정국은 유일하게 총자루를 쥐었다. 전 정국은 총을 잘 쓴다는 이유로 들어왔다.
김 석진이 인간이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단정하게 올린 머리와 언제나 구김 없이 각이 잡힌 수트, 변함 없는 흰 셔츠. 누군가를 처단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거침 없는 사람이 없었다. 김 석진의 총에는 늘 8발의 총알이 있었고, 매일 저녁 7시면 총알이 다 떨어졌다. 한 발이면 한 사람이 죽었다. 김 석진은 매일 8명의 사람을 죽였다.
김 석진은 어린 나이였지만, 꽤 오래 이 바닥에서 살았다. 소문으로는 김 이사의 혼외자식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랐다. 김 석진과 김 이사 정도만 알았겠지. 젓가락보다 칼을 먼저 쥐었다는 김 석진 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김 석진 뒤로 줄을 서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문도 함께 돌았다.
김 석진을 만난 게 내 인생 최악의 실수였다. 그의 곁에서 난 꽤나 길게 살아남았지만, 덕분에 괴로웠다. 나한테는 김 석진이 전부였고, 김 석진의 전부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충성할 유일한 존재였던 김 석진은 자주 사라졌다. 가만히 곁에 있다가 그만큼 자주 사라지던 사람들을 알았다.
김 석진에게 유일한 죄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자주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 기회에 헛된 희망을 품고 달려들었지만, 열에 아홉은 뒤졌다. 김 석진은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나, 어떤 기회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보겠다고 덤벼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김 석진을 원망했다. 하지만 원망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살든 뒤지든, 어차피 김 석진은 승승장구하고 잘 살아갈 테니까.
김 석진은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잠에 들기 전에 개의 목줄을 채웠다. 종일 풀어두었던 개는 밤만 되면 목줄을 채워달라며 김 석진에게 다가왔다. 그럼 김 석진은 개의 목줄을 채우고는 방문 손잡이에 묶었다. 아침이 되기 전까지 방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김 석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혼자 잤다. 개는 김 석진이 깨기 전까지, 그러니까 해가 뜨기 전까지 절대 짖지 않았다. 개가 짖을 때면 늘 사람이 죽어갔다. 잠만큼은 편하게 자고 싶다는 김 석진의 노력이었을 수도 있다. 김 석진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피곤할 때는 유난히도 예민했다.
김 석진과 전 정국은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김 석진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사람이었고, 사람 사이에 생기는 신의를 가장 불신했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김 석진은 눈치가 빨랐으며, 손익 계산 역시 철저했다. 그로 인해 김 석진을 신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며, 그가 하는 선택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 비해 전 정국은 사나운 것처럼 굴었으나,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가 이 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을 의심스럽게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져있는 상실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몇 없었다. 분명 김 석진을 알았을 터였다. 김 석진처럼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전 정국도 김 석진만큼은 잘 따랐다. 그래서 둘의 사이는 이상했다.
김 석진은 왜 전 정국을 데리고 다녔을까?
김 석진이 있는 곳에는 전 정국이 있었고, 전 정국은 김 석진을 따라다니기 위해 애를 썼다. 김 석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곁에 사람을 두는 것을 굉장히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것을 안다. 그의 곁에서 어슬렁대다가 괜히 눈밖에 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 정국은 아니었다. 김 석진은 전 정국이 곁에서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아마 옆에서 미친 짓을 해도 김 석진은 전 정국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미친 짓이 끝나면 그를 데리고 사라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냉대한 김 석진이 왜 전 정국에게만큼은 관대했는지 이유를 모른다. 김 석진은 입이 무거웠고, 제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뒤는 그래서 늘 소문들이 쫓았다. 전 정국이 죽은 지 일주일이나 되었지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가장 대표적이었으나 전 정국이 죽은 이후에는 그 소문이 사라졌다.
전 정국의 이마에 총알을 박은 것은 김 석진이었다.
전 정국의 사무실을 김 석진이 아침부터 찾아갔고, 그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총소리가 났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놈들이 죽은 전 정국을 끌어냈다. 그날부터 김 석진의 곁에는 또 다시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수군댔다. 전 정국이 결국은 김 석진 눈 밖에 난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몇 년을 데리고 다닌 사람을 그렇게 쉽게 처단할 리 없다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 정국이 잘못을 저질렀고, 혹은 그 전부터 꾸준하게 김 석진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게 이번에서야 터지고 말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김 석진이 전 정국의 사무실을 없애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죽은 자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미련스러운 짓을 김 석진이 하고 있었다.
그럼 김 석진은 왜 전 정국을 죽였을까?
사람을 죽이는 이 곳에서 전 정국은 간부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조직원이었다. 그것에 비해 전 정국이 하는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둘러대는 것을 들었을 때는 행정 업무를 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 행정을 볼 것이 뭐가 있다고. 하지만 뭔가를 보는 것처럼 일을 하긴 했다. 전 정국은 사무실에 매일 같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가끔은 서류를 들고 3층을 자주 오갔다. 그 서류의 정체가 사실은 살생부라고, 우리는 가끔 우스갯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 서류가 3층을 향할 때면 다음 날 세 명이 꼭 죽곤 했다.
김 석진을 입에 함부로 올렸다가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 정국은 아니었다. 그를 씹어댄다고 한들, 전 정국의 위치는 그럴 만한 곳이 아니었기에 쉽게 누군가를 죽이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전 정국은 자주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김 석진이 관대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러했다. 전 정국에 관한 첫 번째 소문은 그가 사실은 김 석진의―
얼마 전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분노한 김 석진이 꽤나 많은 인간들을 죽였다. 느닷없는 청소는 아침부터 시작되었고, 당연히 김 석진이 지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은 건물에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김 석진이 애초에 모든 탈출구를 막아둔 탓이었다. 또한 김석진이 심어둔 총잡이들이 이미 모든 층에 있었다. 도망갈 틈이 보이면 바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제 목숨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떠는 게 전부였다.
전 정국의 자리에 새로 들어온 것이 김 남준이었다. 사실 김 남준은 전 정국보다 알고 지낸 사이였다. 걔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업을 할 때는 김 남준만큼이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었다. 중국어를 원어민만큼 능숙하게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김 남준은 쉽게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자리가 마치 제 자리였던 것 마냥 일 처리도 빨랐다. 다행이었다. 빈 자리가 티가 나지 않았다.
김 남준은 전 정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었다. 내게 전 정국을 소개시켜준 것도 김 남준이었다. 전 정국을 앞에 두고 김 남준이 하던 말은 별로 믿기던 것이 아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단단해보이던 것은 같았으니까. 사람을 믿지 않았기에 김 남준이 하는 말을 믿지도 않았고, 그 굳은 얼굴을 믿지 않았다. 전 정국이 죽고 나서야 김 남준에게 물어봤다. 왜 사실이 아닌 것들을 내게 늘어놓았으냐고. 김 남준은 웃으며 어차피 내가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 남준이 전 정국을 소개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