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수를 사랑하라
김석진은 꼴에 형사라고 매일 김태형을 엿 먹였다. 그런데 일개 형사도 아니고 엘리트 코스 밟은 경력 (햇수로) 5년 차 천재 프로파일러. 날짜로 꼬박 세면 아직 만 3년인데 김석진이 잡아 넣은 깡패에 범죄자만 수백 명이 넘어간다. 곧 천 명 찍는대.
“형 나 학원 갔다 올게!”
“네 카드 내역에 피씨방 한 번이라도 찍혀 있으면 이번 주 용돈 없다. 형이 제주도에 없다고 모르는 거 아냐, 형 서울에 있어도 다 보여. 말했어.”
“현금으로 낼 거거든~”
“학원 선생님이 태형이 안 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순간?”
“국물도 없어.”
“히익!”
엿 먹인다기보다는, 그냥 정직한 첫째 형의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씨방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막냇동생의 영원한 보디가드.
김태형에겐 형이 보디가드일지 몰라도 김석진은 사실 서에서 위험인물 취급을 받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소탕해야 했던 깡패 집단 대가리가 김 형사님 애인이래, 말도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는 얘기가 찌라시처럼 나뒹굴고 나자 서장이 석진을 불렀다.
“이번에 걸린 애들 중에 네 애인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
“왜 대답이 없어.”
“제 애인 관계까지 말씀드려야 하는 줄 몰라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자네 지금 불순한 사랑을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지?”
“서장님이 절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어서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김태형이 그 소문 듣고 뭐라 했게.
너네 큰형 깡패 새끼랑 사귄다며? 대한민국 경찰 가오 다 뒤졌네.
고등학교 들어오면서 첫째 형이랑 제일 먼저 약속했던 게 1. 사람 때리지 않기 2. 형 학교에 부르지 말기 3. 형이 학교에 불리는 일 만들지 말기! 였는데… 형한테 진짜 미안하지만 세 개 다 하게 생겼다. 중학교 때 하도 일이 많았어서 고등학교 올라가려면 형 도움이 좀 필요했거든. 근데 어떡해, 이 새끼 말하는 버릇은 고쳐야겠는데.
결국, 형이 학교에 찾아오고, 죄송합니다 인사도 하고, 집에서 한참을 혼나고 엉엉 울고 있는데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형 별로 화 안 났어. 방금까지 사람 한 명 죽일 것처럼 존나 화내더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발개진 얼굴 들었는데 형이 그랬다. 형 진짜 애인 있어. 너도 모르는 그 깡패새끼랑 사귀어, 형.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얼굴이 식을 때까지 말을 못 꺼냈다. 형은 밥 차리고 다시 나가 봐야 한다고, 태형이 아직도 멍한데도 옷 챙겨 입고 나갔다. 형 저 새끼 방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지? 형 지인이라면 백이면 백 다 꿰고 있는 태형이었는데 너무 당황스럽다. 당연히 깡패면 나는 모를 건데, 왜 나도 모르는 깡패랑 사귀냐고. (나 닮아서) 잘생긴 우리 형이 대체 왜!
그 날로 태형이 서울에 올라갔다. 형에게 확인 사살을 받아야겠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전말은 이랬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석진이 막 막내 형사로 형사 3팀에 들어 왔을 때가 마침 국가적으로 위험할 만큼 큰 마약조직이 설치다가 거의 다 잡히면서 사건이 마무리 될 즈음이었다. 석진도 뉴스를 보면서 이번 사건이 장난 아니게 크다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배후가 거의 나라 하나 급으로 컸댄다. 석진이 조금만 일찍 들어왔어도 지금쯤 프랑스에 출장 가 있었을 거라고,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덧붙이면서 선배가 말했다.
“이번에 이거 하나로 안 끝나. 너도 좀 이따가 증거나 자료 보면 알겠지만, 저 새끼들 지금 한 놈 아니고 한 무리 아니야. 내가 봤을 때 대가리 한 명이 있어. 걔만 감으면 될 것 같긴 하다만… 모르겠네.”
“대가리만 감으면 된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그때 김석진이 이해한 건 머리를 감기는 일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림잡아 사오십 대 될 저 커다란 마약 조직의 대가리를 얼굴로 꼬셔야 한다고, 그러면서 뭐라도 뜯어 내야 한다고. 어차피 감방 넣어 봤자 돈 써서 다 나올 거 최대한 많이 뜯어 놓는 게 낫다고. 석진은 자신에겐 별거 아닌 일일 줄 알았다. 우선 대가리가 여자건, 남자건 방금 들어온 막내를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내진 않겠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서장님이 친히 석진을 불러서까지 말씀하신 내용이 그거였다. 설마 설마 했던 바로 그거, “출장”에 “임무”.
석진이 해야 할 중요하다 못해 안 하면 죽는 임무는 두 가지였다. 잠자리 가지기, 정보 뜯기. 그때까지만 해도 석진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아 경찰청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장까지 말렸는데, 석진의 교수가 자기를 믿으랬다. 석진을 믿는 것도 아니고, 자길 믿고 석진을 보내래.
하루아침에 떠난 곳에서 만난 그 대가리라는 놈한테 석진은 한국에 보냈던 스파이1로 소개됐다. 대가리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작전도 모르지만 우선 석진이 할 수 있는 건 정보 내놓는답시고 걔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였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잡혔다. 한국에서는 싸움이라면 웬만한 범죄조직 하나는 소탕할 만한 짬바였는데, 꼼짝 못하고 대가리 앞에 무릎 꿇렸지 뭐야. 체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얼굴 살피느라 바빴다.
근데 꽤 생겼더라. 검은색 정장 쫙 빼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무슨 화보 찍는 것처럼 머리가 젖어 있었고. 지팡이로 석진 목 치길래 석진이 고개 들었는데 너도 소문을 듣고 왔냐고 했다.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나 게이 아닌데.”
“예?”
“너도 전정국이 게이라고 꼬셔 보겠다 온 한국 경찰 아냐? 생긴 거 보니까 딱 마스크 되는 한국 짭새고, 날 잡으러 온 건지 꼬시러 온 건지 모르겠는 목적 갖고 막 들어온 거 아니냐고. 근데 안타까워서 어쩌나. 나 게이 아닌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정면 승부였다. 일단 솔직하게 밀어 붙이자.
그러자 정국이 의아하게 석진을 쳐다봤다. 그럼 여길 들어온 게 정말 자기를 잡으러 들어온 거냐고. 석진이 표정을 굳히자 그게 정말이라고 확신한 듯 석진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렸다.
“새끼야, 내가 이 판에서 몇 년인데.”
“나이도 얼마 안 돼 보이는데 몇 년을 했으면 했겠어? 좋게 나랑 하룻밤 자고 생각해.”
석진이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정면 승부를 내건 건 아니었다. 포지션부터 으르렁대며 정할 건 둘째 치고 전정국 허리에 찬 총을 빼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저도 얼굴은 좀 생겼거든요, 정국아.
정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석진을 잡아끌었다. 네가 자신 있는지는 오늘 밤 지나면 알겠네.
정국이 석진보다 다섯 살 어리다는 건 한창이던 새벽 세 시쯤에, 이번 일만 잘 되면 손을 뗄 거였다는 웃기는 자백은 정액을 빼주던 새벽 다섯 시쯤에, 다음 주에도 만날 수 있냐는 애프터 신청은 아침 일곱 시에 들었다.
김석진 이름 석 자에 형이란 호칭 넣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던 애가 석진이 건물 나설 때 쯤엔 순한 말티즈가 돼서 말하더라.
“나 한국 가면 형 만날 수 있어?”
아직도 쟤 손톱에 긁힌 등이 얼얼한데 뭔 또 만나기까지…. 석진은 비즈니스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정국과도 원나잇으로 끝내고, 정보 보내고, 또 다른 사건 처리하고를 이미 머리에 그렸다. 그런데 어제와 다르게 뽀송해진 얘는 왠지 아닌 것 같네.
그래서 한국 오자마자 정국과 대화했던 녹음본 풀려던 거 멈췄다. 대신, 풀어도 괜찮을 만한 정보들만 몰래 빼서 찔렀더니 정국 밑에 있던 놈들 몇 명 잡아넣었다. 걔들이라고 영향력 없던 거 아니라서 석진은 충분히 자기 할 일 한 엘리트가 됐고 대가리, 그러니까 정국을 못 잡은 게 좀 아쉬울 뿐이지 아무도 못 할 일을 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석진은 그렇게 집에서도 최고의 형이자 아들내미, 대한민국에서 칭송받는 경찰이자 형사가 됐다.
그리고 한국에 정국이 왔다.
너 왜 여기 있냐는 물음에 정국이 집 앞에서 사 왔다는 바게트 흔들면서 그랬다. 형이 나 안 넣었잖아, 빵에.
“그래도, 정이 있는데.”
“형이 무슨 생각으로 안 불었는지 모르겠는데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귀찮은 일 안 하게 돼서 칭찬하려고 왔지. 그리고 뭐… 형이 말해 봤자 내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름 나 생각해 주려고 했다는 게 귀여워서 왔어.”
누가 누굴 보고 귀엽다고 하는지 모를 정도로 밤톨처럼 머리를 자른 정국이 말했다.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어려진 것 같았다. 정말 스물 맞아? 싶을 정도로. 전에 만났을 때는 머리도 꽤 길었던 데다가 옷도 하도 어른스러운 걸 입어서 그랬는지 다섯 살 차이래도 스물셋은 돼 보였는데, 노란 맨투맨에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 입은 정국은 영락없이 고딩이었다. 방금 학원을 마친 고딩이래도 믿을 만큼 어리고 귀여워서 하마터면, 겨우 두 번째 만난 비즈니스적 상대였는데도 뽀뽀해 버릴 뻔 했어.
정국은 오늘 잘 곳도 내일 잘 곳도 없이 막무가내로 한국에 들어와 버린 불법 체류자였다. 아직 그는 범죄자 신분이고, 지금 정국을 대신해 감옥에 들어간 정국의 따까리들이 입을 열지 않아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당장이라도 현상 수배에 현상금만 억 단위로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러면 그런 인물인 정국을 석진이 밖으로 내쫓았느냐? 그건 아니었다. 그러면 경찰에 신고를 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그건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만났다. 만났다고 표현하기에는 좀 그렇지, 정국은 그 이후로 석진의 집에서 살았다. 석진이 범죄자 수십 명을 잡아넣는 동안에도 항상 마음에 걸렸던 게 정국이었다. 불의를 못 참아 된 형사가 마약 팔아넘기는 깡패 새끼를 집에 들이고 있다고. 그것도 세계를 단위로 움직이는 영리한 애를? 무슨 작전이 있는 건 아닌지 싶어 업무적인 얘기를 꺼낸 적이 없는데 딱 하나 약점 잡힌 게 있었다. 그게 태형이었다.
“형! 나! 왔는…데.”
모르는 외간 남자애가 뻔뻔하게 과자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고 있으니까 동생이 어이가 없긴 했겠지. 동생은 나 하나뿐인데 자취하러 올라가더니 갑자기 나만큼 귀여운 애랑 같이 살고있는 걸 보면. 그날로 석진은 가족 관계를 모조리 들켜 버리고 말았다. 태형이 정국에게 또 말려 버려서 다 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제주도에서 일하시고, 아부지도 같이 거기 계시는데 형만 출세했지 머. 엄마가 나 서울 물 좀 들어오라고 형 집 갔다 오래서 써프라이즈! 로 왔는데 네가 있었던 거라니까. 정국이 시킨 치킨 쫍쫍대면서 이종사촌 온갖 가족 관계 다 터는 동안 석진이 집에 왔고 태형은 그날 밤 처음으로 형이 ‘그걸’ 하는 걸 봐 버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엄마가… 형 보러 가라고 해서….”
“정국이 너 얘한테 무슨 말 들었어.”
“별말 안 했는뎅.”
둘이 똑같이 생겨서는 하는 말도 답답하게 비슷해서, 석진이 대문 앞에 씨씨티비라도 분석해야 하나 하는 거 겨우 참았다. 어차피 정국은 곧 프랑스로 돌아갈 거고, 그러면 다시 마약 운반에 손을 댈 건데 그러면 태형이든 가족이든 안전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기는 어찌 어찌 살아 남는다 해도 당장 태형은 위험했다. 일단 김태형 눈빛을 보니 전정국한테 홀린 게 분명했다. 석진도 그랬으니 할 말 없었지만, 석진은 우선 김태형이 전정국에게 아예 마음이 없어지도록 해야 할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태형이 자지 않는 걸 아는 데도 정국에게 먼저 키스하러 다가갔다. 그리고 평소보다 빠르게 애무하고, 귀를 핥고, 고간에 손을 대고, … 그 모든 과정을 태형이 보도록 일부러 문을 열었다.
그 다음 날 정국이 떠났다. 태형에게 속삭였다지, 네 형 날 싫어하게 만드려고 어제 섹스한 거니까 너무 걱정말라고.
안타깝지만 모든 걸 미리 꿰던 정국은 틀렸다.
정국이 프랑스로 돌아가는 조건은 더 이상 마약에 손을 대지 말 것. 그거 하나였다. 프랑스 국적 얻어서 네가 하고 싶은 것들 하며 사는 게 제일 낫지 않아? 공항에서 맥주 한 캔 따며 물었더니 정국이 그랬다. 형은 나 정장 입은 거 잘 어울리지 않디? 총 쏘고, 피 철철 나는 애새끼 대가리 따고.
석진이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가 그런 건 모르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딴 짓 하면 다시는 안 볼 것 같아. 정국이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더니 말했다. 형 나 좋아해요? 석진이 맥주를 뿜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곧바로 입을 맞췄다.
그 이후로 프랑스에서 마약 만지던 깡패 새끼가 김석진 형사님 애인이라는 거, 대한민국 매스컴에 일파만파 퍼졌지만 그렇게 타격은 없었다. 정국이 죄를 인정하지 않아서 석진이 도망갔다. 태형이 한 달 동안 충격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형을 찾으러 프랑스에 갔고, 그 셋이 영원히 사라졌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닿질 않는다.
